아이와 싸우면 부모가 먼저 사과하고 화해해야 하는 이유
집에 돌아오니 아들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열불이 났다. “너, 그렇게 공부 안 하려면 학원 다니지 마”로 시작된 나의 시비가 아들의 심기를 건드려 싸움이 됐다. 인문학 강의에서 시작된 나비의 날갯짓이 공부도 안 하는 아들에게 학원비를 쓰는게 아깝다는 생각을 거쳐 다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론은 나의 사과로 끝났다.
머리 큰 아들과의 싸움은 거의 100% 나의 사과와 화해 요청으로 끝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있지만 누가 먼저 잘못했든 거의 예외 없이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한다. 어릴 땐 엄마가 화내는 모습만 봐도 벌벌 떨며 “잘못했어요” 하던 아들이 사춘기를 거치며 “뭐요? 왜요?”라며 눈을 치켜 뜨는데 맞짱 떴다 아들이 삐치기라도 하면 아쉬운 건 늘 나이기 때문이다.
칼 필레머 코넬대 교수가 1000명이 넘은 70세 이상 노인을 인터뷰해 삶의 지혜를 정리한 책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을 보면 ‘(자녀와)불화가 생겼을 때 화해가 필요한 쪽은 부모다’란 조언이 있다. ‘부모는 자식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 하고 관계에 가치도 더 많이 부여하기 때문에 관계가 악화되거나 붕괴되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도 훨씬 크다’는 것이다.
다 큰 자녀와 다툼이 생겼을 때 자녀는 부모와 말 한 마디 안 하고도 잘만 지낼 수 있지만 부모는 자녀가 궁금하고 걱정돼서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결국 먼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한다. 문제는 자녀가 화해를 받아주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필레머 교수는 이를 ‘관계의 단절’이라고 표현했다. 관계의 단절은 자녀와 사이가 나빠져 연락을 끊고 지내는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다.
필레머 교수는 자녀가 폭력적이거나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줘 인연을 끊고 사는 것이 부모에게 더 나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와 관계에 금이 가게 만든 사건들이 그 당시에는 중요해 보이지만 인연을 끊고 사는 고통을 감수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 자식이니 잘 되라고 야단치는 것을 자식은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야단이 자녀에게 합당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관계에 금이 가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금이 점점 벌어진다. 이런 관계의 단절을 피하려면 다툼이 있을 때 시시비비는 차후로 미루고 먼저 화해해 관계부터 회복해야 한다. 특히 아이가 클수록 부모가 먼저 화해를 요청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큰 뒤에도 어린 시절만 생각하고 성인으로 대우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늙는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가 된 뒤 20~30년간 자녀와 한 집에서 산다. 그 후 세월은 성인이 된 자녀와 다른 공간에서 살며 관계를 유지하는데 고령화로 독립한 자녀와 지내는 시간이 30~40년으로 길어졌다. 필레머 교수는 어린 자녀를 키울 땐 자녀를 성공시켜 독립시키면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더 긴 기간을 어른이 된 자녀와 교류하며 지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후에도 자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초석은 어린 자녀를 키울 때 만들어진다. 자녀를 양육할 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체벌과 막말은 피하고 관계의 균열이 심해지기 전에 불화는 조정해야 늙어서 힘이 없고 사회적인 교류가 뜸해 외로울 때 자녀가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나는 아들을 볼 때 게임에 빠진 철없는 고등학생의 모습만 보인다. 그래서 “커서 뭐가 될래”라는 말을 하며 아들을 무시하고 못마땅하게 여길 때가 많다. 하지만 아들이 뭐가 되든 늙어가는 나를 찾아주고 함께 다정한 시간을 보내주는 아들이라면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미래의 아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아들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지혜가 부족하니 갈등이 생기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빨리빨리 화해라도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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